제품에 적혀 있는 유통기한보다 날짜가 지난 된장이 냉장고에 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이상은 없어 보인다. 버려야 할까? 유통기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꿔서 표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이르면 2023년부터는 이런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식품 제조 및 유통업계에 이슈로 떠오른 소비기한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소비기한에 대한 모든 것
소비기한이란?
식품 등에 표시된 보관방법을 준수할 경우 섭취하여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한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냉장보관을 잘하면 현행 유통기한보다 몇 배의 시간이 지나도 섭취가 가능한 식품들이 많다. 유통기한이 보통 14일인 우유는 기간 만료 후 45일이 지나도 괜찮다. 슬라이스 형태의 치즈는 유통기한 6개월보다 70일이나 더 먹을 수 있다. 액상 커피 등 우유가 포함된 음료도 약 11주인 유통기한보다 30일가량 더 섭취해도 되는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냉동만두는 유통기한 만료 후 25일이 지나도 품질에 큰 변화가 없다.
이렇게 현행 유통기한은 그 기한이 경과하여도 일정기간 섭취 가능하나, 소비자는 폐기시점으로 인식하거나 섭취 가능 여부 판단에 혼란이 있어 왔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유럽미〮국일〮본호〮주캐〮나다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식량 낭비 감소, 소비자에게 명확한 정보 제공 등을 목적으로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고 있어 이러한 국제적인 추세를 반영하여 도입하게 된 것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다만, 냉장 보관 기준 개선 필요 품목(우유류)은 시행일로부터 8년의 범위에서 총리령으로 정하는 날부터 적용 가능하다.
소비기한 유통기한과 다른 점
유통기한이란 것이 식품의 품질이 저하되는 시점보다 당겨서 보수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바로 못 먹게 되는 건 아닌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개봉하지 않은 두부는 유통기한에서 90일까지 경과해도 괜찮다고 하고, 계란도 유통기한보다 25일 지날 때까지 괜찮다고들 한다. 식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최종 기한인 유통기한(Sell by Date)과 달리 실제로 섭취가 가능한,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 인정되는 소비 최종 기한을 소비기한(Use by Date)이라고 말한다.
위에서 예를 든 두부와 계란 말고도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가 많은 식품은 많이 있다. 물론 유통기한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건 분명하지만, 잔뜩 사다 놓은 식품들이 유통기한 조금 지났다고 버리기엔 아까운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두부는 유통기한이 14일인데, 소비기한은 유통기한으로부터 90일까지이다. 생각보다 길다. 계란도 유통기한은 45일이지만 소비기한은 그로부터 25일을 더해서 70일까지 괜찮다고 한다. 우유의 유통기한은 14일이지만 소비기한은 유통기한이 지난 뒤 45일까지라고 한다. 개봉한 우유도 종류에 따라 유통기한으로부터 최대 1주일까지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유통기한이 3일 정도로 짧은 식빵도 소비기한은 그로부터 20일까지라고 하고, 고추장의 유통기한이 18개월이지만 소비기한은 2년 이상인 것처럼 식품에 명시된 유통기한과 명시되지 않은 소비기한의 간극은 꽤나 크다. 물론 소비기한은 적절한 보관 방법을 지킬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참치 캔이나 통조림 등 일부 실온 보관인 제품을 제외하면 냉장이나 냉동 보관이 필수인 경우가 많고, 철저히 미개봉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개봉한 두부를 따로 냉장고에서 보관했다고 유통기간 지나 90일까지 뒀다 먹어도 된다는 게 아니란 말이다.
왜 식품에 소비기한 말고 유통기한을 명시했을까? 이는 유통기한 표기 방식을 도입했던 1985년 당시만 해도 식품제조기술이나 냉장 유통 환경 등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에 기인한다. 그렇기에 가급적 보수적으로 유통기한을 정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려 한 것이다. 요즘은 제조기술은 물론 포장 기술, 유통 환경 등이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개선되어 소비기한을 적용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소비기한 표시제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내년인 2023년 1월 1일부터는 식품 제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표시된다. 단, 우유류는 냉장 보관기준 개선 등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2031년부터 소비기한으로 표시된다고 한다.
소비기한 도입 – 선택이 아닌 필수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소비기한 도입이 대세라고 한다. 일본, 영국, 유럽연합 등은 소비기한과 품질 유지 기한을 병기하고, 중국도 소비기한과 제조일자를 병기한다고 한다. 외국도 그렇고 국내에서도 소비기한 표시제를 채택한 것엔 이유가 있다. 유통기한으로 인해 무수히 버려지던 식품 폐기 및 반품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된 음식이 전체 음식물 쓰레기의 10%라고 한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유통기한 때문에 발생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1조 5400억원이라고 추정한다. 소비기한 표시로 바꾸면서 폐기 감소에 따른 이익이 약 9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도 있는 등 불필요한 식품 폐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음식물 폐기에 기인한 비용뿐만 아니라 식품 폐기량이 줄어들면서 배출되는 탄소도 줄어든다. 요새 국제적으로 관심이 많은 환경보호와 관련된 음식물쓰레기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곤 하는데, 전체 탄소 배출량의 8%가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보다 21배 강한 온실가스인 메탄가스를 뿜어내는 거대한 탄소 배출원이 음식물쓰레기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더욱 극명하게 절감하는 기후변화의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면, 당장 음식물쓰레기 줄이는 것이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실천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환경 보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