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세 딸이 60대 친모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제3자인 한 무속인이 세 딸을 ‘가스라이팅’ 했다는 점이다. 범행 이후에도 세 딸은 무속인의 잘못을 줄이고 감싸려고 했다. 이 무속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를 가족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범죄 사건에서 등장한 ‘가스라이팅’ 이란 과연 무엇일까?
가스라이팅 이란?
가스라이팅, 일명 ‘가스등 효과’란 상대의 심리를 조종해서 상대에게 자신의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이 말의 어원이 된 연극 <가스등>에서, 남편은 일부러 집안의 가스등을 어둡게 만들어 놓고는 아내가 “집안이 어둡다”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며 아내를 탓한다. 아내는 희미한 가스등 아래에서 점차 자신이 망상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남편에게 의존한다.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은 이 연극 주인공들의 행동에 착안, 상대방을 세뇌하여 판단력이 흐려지고 의존적이게 만드는 행위라는 의미의 심리학 용어 ‘가스라이팅’을 만들었다.
가스라이팅은 누구나 당할 수 있지만 자신이 피해자이거나 가해자라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폭력과 달리 연인, 부부, 부모 자녀, 상사와 부하직원과 같이 아는 사이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대체로 평등한 관계보다는 위계질서나 권력 구조가 있을 때 발생한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은 심지어 자신이 외도, 폭행 등 도덕적・법적으로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조차 “네가 원인 제공을 해서 이렇게 된 거야”라든가 “맞을 짓을 해서 때린거지”라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상대방에게 잘못의 책임을 전가한다. 지속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해자는 오히려 상대를 원망하기는커녕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자책하며 급기야 자신을 혐오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자아가 점점 작아지다 보니 상대방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처럼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심리적 지배는 “내가 아니면 누가 네 이야기를 들어주겠냐. 널 위하는 건 나밖에 없어”라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관심인지 학대인지 깨닫기가 어렵다. 이후 가해자는 반박과 무시를 반복하며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돌연 화를 내면서 상대가 마치 문제가 많은 사람인 것처럼 말한다. 피해자는 ‘내가 잘하고 있나?’ 끊임없이 의심하고 가해자에게 확인하게 된다. 가해자가 어떤 판단을 해주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 즉 가스라이팅은 상대의 심리에 조작을 하는 행위다. 더불어 가해자는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내가 널 제일 잘 알아. 다른 사람들은 너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거야” 라며 주변의 관계들을 끊어 놓고, 오로지 가해자 본인에게 의지하도록 만든다.
만약 주변의 누군가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 같다면, 가해자를 설득해 바꾸려고 하기보다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사람들은 거절을 잘못 하거나, 지나치게 공감 능력이 발달한 사람이 많다. 따라서 관계 단절이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용기를 내어 상대에게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
설사 상대가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가해자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해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거나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거절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상대와 있었던 일을 문자나 이메일로 저장해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주변에 신뢰할 만한 사람이나 전문가와 상담하고 도움 요청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행동 단계
1 단계 : 관계 형성
가스라이팅이 일어나는 가해자와 피해자는 매우 밀접한 관계입니다. 가족, 선생님, 직장 상사, 애인이죠. 가스라이팅의 가해자는 타인의 경계심을 풀고 조종하는 데에 능한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가 대부분이며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충분히 일어납니다
2 단계 : 기억 왜곡
관계가 형성되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자신감을 잃게 만듭니다. 스스로 판단력을 상실하도록 무력화시킨 후, 자신이 대신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하죠. 이때엔 물리적인 힘이나 사회적인 권력으로 피해자를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그 후엔 사실이 아닌 일도 일어났다고 거짓말을 하며 기억을 왜곡합니다. 피해자는 자신을 불신한 채 왜곡된 기억을 믿기 시작합니다.
3 단계 : 미니마이징
정상적인 사람이 2단계까지 쉽사리 갈 리 없습니다. 강하게 반발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3단계에 이르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자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이때입니다.
4 단계 : 무시
이때부터 가해자는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나 자신의 의구심으로 가해자에게 의문을 갖기만 해도 ‘지나치게 상상력이 많은 예민폐로 몰아가죠. 연인 사이에선 ‘쓸데없이 집착이 심하다’, ‘애먼 사람 잡아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다’고 몰아붙이는 파트너가 있다면 받아들이지 말고 의심하세요. 이 단계에 들어서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기억과 판단력, 감정까지 ‘잘못됐다’고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결론은? 피해자는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통제될 수밖에 없죠.
* 오랜 시간 동안 의도적 또는 의도적이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주장하고 강요하면서 상대를 점점 자신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 정말 무서운 것 같습니다.
가스라이팅 피해자의 행동 단계
1 단계 : 논쟁
이때만 해도 내 파트너가 고집이 세구나 생각하고 타이르며 대화로 풀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 단계만 해도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굳건한 상태죠.
2 단계 : 매달림
피해자는 가해자의 눈 밖에 날까 봐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언쟁이 끊이지 않죠. 피해자는 ‘옳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얼마나 착하고 상대방을 생각하는지를 증명하기 시작합니다.
3 단계 : 자책
이제 가해자의 룰로 완전히 들어섰습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고, 가해자의 비난이 다 맞다고 믿게 됩니다. 자신의 상식에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온 힘을 다해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가해자가 비난한 결함에 집착하고 고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가스라이팅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의 자가진단표와 심리 전문가들의 체크리스트를 재구성했다. 아래 내용 중 한 항목이라도 여러 번 겪었다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해봐야 한다. 가스라이팅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상대와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1. 간단한 결정도 스스로 내리기 어렵고, 왠지 몰라도 항상 상대방 방식대로 일이 진행된다.
2. 상대에게 “너는 너무 예민해”, “이게 네가 무시당하는 이유야”, “비난 받아도 참아야지”, “나는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어”, “너 혼자 상상한 것이겠지” 등의 말을 들었고, 스스로 내가 예민한 건 아닌지 자주 돌아본다.
3. 주변에 상대에 대한 변명을 하게 되고, 결국 상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게 된다.
4. 내 생각보다는 상대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내가 좋아하는지 보다 상대가 좋아하는지를 늘 염두에 둔다.
5. 상대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하고, 상대가 화를 낼까 봐 안 해도 되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6. 상대를 알기 전보다 자신감이 없어졌고 삶을 즐기지 못하게 됐다.
* 혹시 지금 내 주위의 사람 중 위 내용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스라이팅은 긴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길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 나를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지배(또는 조종) 한다.